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서울의 봄 영화 줄거리 및 실존인물 비교

by be.lre 2024. 1. 16.

네이버 영화 서울의 봄 스틸샷

서울의 봄 줄거리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군사 반란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날은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는 날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10월 26일 이후, 서울에 봄바람이 불어온 것도 잠시 12월 12일에 보안사령관 전두광이 군사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전두광은 군 내 조직을 총동원하여 최전선의 전방부대까지 서울로 불러들입니다.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의 반란군에 맞선 수도경비사련관 이태신장군을 비롯하여 진압군과 반란을 일으킨 군사들과의 숨 막히는 9시간을 찍어낸 영화입니다. 

 

서울의 봄 역사적 배경

10.26 사건이 일어나 대통령 박정희가 사망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전두환 쪽은 정승화가 수사에 비협조적이라며 강제 연행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서빙고 분시로 강제 연행했습니다.

이때 방해가 될 특전 사령관 정병주 및 수경 사령관 장태완 , 육군 본부 헌병감, 김기진 등을 전두환이 불렀다며  연희동 요정 연회에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전두환이 없었습니다. 연회 도중 정승화 연행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병주와 장태완 등의 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최선을 다해 인근의 병력을 동원하여 전두환과 하나회에 대응하려 했지만, 9시간의 전투는 결국 무력화 되었습니다.   

 

하나회는 어떤 곳인가

전두환과 노태우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간 군내 사조직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씀 드리자면 1963년 전두한, 정호용, 노태우, 김복동 등 대한민국 육사 11기 생들의.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되었던 군대 안의 사조직입니다.

비밀 사조직이었으며 서약을 위반하게 될 경우 인격 말살까지 진행했었습니다.

처음엔 친목회로 시작하였지만 제3 공화국 당시 박정희의 배후 속에서 성장해나갔습니다.

박정희는 하나회 출신들 위주로 진급을 시켰으며 정부 주요 자리뿐만 아니라 정계까지 영향력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두환과 노태우의 내분으로 인해 점차 세력이 약화되었고,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뽑히고 문민정부에 들어선 후 사실상 해체가 되었습니다.  

 

전두환은 누구인가

1951년 육군사관학교에 11기로 입학했습니다. 1955년 육사 졸업과 동시에 군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1961년 서울대학교 학생군사교육단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중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 육사 생도들과 군부 지지 시가행진을 별여 박정희 소장의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리하여 전두환은 국가재건최고회의 비서관이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하나회를 결성하여 비호를 받으며 군에서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19879년 3월에는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임명되었는데 같은 해에 10.26 사건이 터지자 계엄법에 의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두환은 수사본부장이라는 직책과 하나회를 통해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으며 1980년엔 5.17 내란 쿠데타를 일으켜 현정을 중단하였습니다. 이후 5.18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고 국가안보위비상 대책위원회를 설립하여 국정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1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어 제5공화국을 출범시켰습니다. 

 

노태우는 누구인가

전두환과 함께 하나회를 결성한 사람입니다. 12.12 군사반란을 주도한 사람이며, 정국을 장악한 뒤 전두환이 집권 후엔 정치인으로 전향하였습니다. 신헌법에 따라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대선에서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어 1988년 2월 25일 대한민국 제6 공화국을 출범시켰습니다. 

 

이태신의 실제인물 장태완 소장은 누구인가

대한민국 군인 출신의 정치인입니다. 1950년 육군 소위로 임명되었고,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12.12 군사 반란 당시 육군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쿠데타에 끝까지 맞서는 강인한 인물이었습니다. 반란 이후 1980년도 1월에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정병주 장군 등과 같이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강제 예편되었습니다. 이후 6달 동안 가택연금 생활을 하였습니다. 

1982년에는 한국증권전산 회장을 맡았습니다. 1994년에는 재향군인회장에 당선되어 6년간 재향군인회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 3월 새천년민주당에 들어가 정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2002년에는 누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로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