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남한산성의 47일의 이야기
인조 14년 조선을 침략한 청의 대군이 단 며칠 만에 도성을 점령하고 강화도로 가는 피난길이 막히자 왕과 신하들은 남한산성으로 몸을 피합니다. 남한산성의 자원은 풍부하지 못해 50일가량을 버틸 수 있는 자원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전쟁을 피하려면 소현세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청의 요구를 수용하자던 최명길의 주장은 김상헌과 조정 신료들의 반대로 묵살됩니다.
한편 최명길은 세자를 청으로 보내는 게 두려웠던 왕을 위해 청의 장수 용골대를 찾아가 다른 방법을 찾아봅니다.
하지만 별다른 소득은커녕 청의 황제가 직접 조선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최명길과 김상헌은 또다시 논쟁을 펼칩니다.
이번에도 최명길의 주장은 묵살되고 맙니다.
그렇게 천군과의 전투가 시작되고 막강한 군사력과 수자에 밀렸던 조선군은 맥없이 무너집니다.
칠복을 구하려다 실패한 순간, 불편한 무기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던 서날쇠는 김상원을 찾아가 무기를 고치게 해 달라 부탁하고, 낡은 무기를 새로이 정비하고 다시 전투에 나선 군은 수어사 이시백의 뛰어난 활약으로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그토록 작은 승리에 모두가 취해 있을 때 최명길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게다가 근왕병들에게 보낸 전령이 죽고, 삼전도에는 칸의 군대가 몰려오는 등 전국은 점점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마지못해 최명길과 함께 용골대를 찾아간 영의정도 그들의 군사력과 태도를 보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닫습니다.
치욕만 당하고 돌아온 영의정은 처벌을 면하고자 왕에게 무리한 전투를 하자 제안합니다.
영의정은 전략도 전술도 없이 청나라와의 전투를 벌입니다. 그리하여 끝내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이 일로 영상 대신 채철사직을 맡게 된 김상헌은 다시 한번 근왕병들에게 격서를 보낼 것을 왕에게 제안합니다.
김상원은 왕의 옥새가 찍힌 격서를 서날쇠에게 주고 그를 성 외곽으로 보내 군 보강에 희망을 걸죠.
그리고 얼마 후 자신들을 외면하는 조선의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칸도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왕은 살고 싶었습니다.
최명길은 살고자 하면 답서를 보내라고 합니다.
김상헌은 살고자 하면 답서를 보내지 말라고 합니다.
격서를 보낸 지 며칠이 지나도록 다른 군영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자 김상원의 입지도 좁아집니다.
김상원이 그토록 기다리던 근왕병들의 봉환은 결국 불타오르지 않았습니다.
궁지에 몰린 왕은 신하들에게 답서를 쓰게 합니다.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었던 신료들은 적군이 코앞에 다가온 줄도 모른 채 또다시 최명길의 답서를 두고 갈등합니다.
김상헌은 한 나라의 군왕이 오랑캐에 맞서 떳떳한 죽음을 맞을지언정, 어찌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는 것을 볼 수 없으니 자신의 목을 베라고 말합니다.
최명길은 오랑캐의 발밑을 기어서라도 되나라 백성이 살아서 걸어갈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자만이 비로소 신하와 백성이 마음으로 따를 수 있는 임금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며칠 후 청의 공격이 시작되고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으며 산성은 순식간에 청군에게 장악되죠.
최명길은 항복이나 다름없는 왕의 답서를 들고 서둘러 칸에게 달려갑니다.
결국 사십칠일 만에 곤룡포를 벗고 성을 나온 왕은 삼전도에 도착해 마치 칸 앞에 힘없는 백성인 양 무릎을 꿇습니다.
최명길은 칸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왕을 보며 피눈물을 흘립니다.
끝내 치욕스러운 왕과 조선을 거부한 김상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수많은 백성을 잃고 무사히 왕좌를 보전받은 왕은 을씨년스러운 궁으로 돌아옵니다.
어리석은 논쟁과 내부의 폐단이 망가뜨린 47일간의 기록입니다.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은 47일간의 기록을 담은 소설입니다.
남한산성이 배경으로 삼고 있는 병자호란 같은 경우에는 영광스러웠던 기억만 우리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멸과 실패 치욕의 역사도 우리 역사의 중요한 일부분이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영화 인물 소개
1) 불 같은 신념을 지킨 척화파의 '김상헌' 을 김윤석 배우님이 연기하였습니다.
2) 냉정하게 현실을 본 주화파의 '최명길'을 이병헌 배우님이 연기하였습니다.
3) 고립된 조선의 왕 '인조'를 박해일 배우님이 연기하였습니다.